내 일상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들...
by 교활한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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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포르노에 대한 유사 리얼리티的 고찰 - 패밀리 비지니스


1. 패밀리 비지니스란 어덜트 코메디는 미국의 케이블 방송 쇼타임에서 2003년부터 현재까지 3번째 시즌을 방영하고 있는 리얼리티 코메디 프로그램이다. 실제 포르노 업계에서 시모어 버츠 (Seymore Butts)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포르노그래퍼 아담 글래서의 실제 생활을 그대로 코메디 프로그램에 옮긴, 요즘 유행하는 리얼리티 쇼에 바탕을 둔 코메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 시모어 버츠의 실제 상황 자체가 제목 "패밀리 비지니스"가 보여주듯 일반인의 선입견을 확 깨는 상황이라는게 이 코메디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본인이 감독 제작 출연까지 겸하고 있는 포르노 프로덕션의 CEO인 것 까지는 일반적인 상황이지만, 실제로 업무를 도와주는 매니저는 사촌 스티브, 그리고 재무는 실제 어머니인 릴라가 맡아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염 포르노그래퍼와는 확실히 다른 점이다. 포르노그라퍼의 사업을 어머니가 직접 도와준다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센세이셔날리즘이 판치는 요즘 리얼리티 기반 코메디 프로그램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다.

2. 사실 시모어 버츠는 포르노 업계의 베테랑이다. 90년대 초 포르노 업계에 프로-앰(Pro-Am)이란 새로운 제작방식에 의해 포르노 업계의 기반과 패러다임 자체가 뿌리채 흔들리기 시작할 즈음,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기획력으로 프로-앰 마켓의 막강한 브랜드파워로 떠 오른 인물이다. 예명 자체가 "엉덩이를 더 보기 (See More Butts)"를 바로 떠오르게 하는 응큼한 말재롱을 펼치는 이 포르노 업계의 악동은 베테랑 액터들이 이끌던 프로-앰 시장에서 젋은 혈기와 발랄함, 그리고 자신만의 페르소나와 니치 마켓에 대한 확실한 공략으로 인디펜던트를 유지하고 있는 지금에도 포르노 업계의 기린아로 대접받고 있다.

3.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한 영화평론에서 "DTP의 출현이 섹익스피어를 만들어내진 못한 것처럼 홈 비디오 카메라의 보급이 대가들을 출현시키지는 못한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일반 영화에서는 맞는 말이고 실제로 비디오 카메라의 활용이 퍼니스트 비디오 같은 데 보낼 일상의 동영상을 찍는데 소비되고 있는 현 상황에선 아주 적절한 지적이지만 이 명제가 포르노 업계에 들어와선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되고 만다. 80년대 보급된 비디오 플레이어의 보급이 포르노그라피의 배급시장의 구조를 한순간에 바꾸어 놨듯이, 90년대부터 대중적이 되기 시작한 컴팩트 비디오 카메라들은 (이후 디지털로 더욱 발전하면서) 포르노그래피의 제작 방식과 그에 따른 배급과 소비 시장을 완전히 바꿔놨던 것이다.

이 거대한 물결의 기저에는 아마추어리즘의 확대라는 흐름이 있고 이것은 곧 촬영 및 편집 기술의 보편화로 인한 제작 비용의 절감과 이에 따른 진입 장벽의 철폐와 자본의 분산 그리고 배급라인의 다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기술 변화에 따른 시장 변화에서 가장 확실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새로운 포르노그라퍼 세력들이 있었으니, 이들을 우리는 곤조 혹은 프로-앰(Pro-Am)이라 부른다. 렌디 웨스트나 에드 파워즈로 대표되는 이들 그룹은 당시 대두되던 아마추어리즘의 제작과 진행의 "아마추어리쉬"한 부분을 과감히 생략한 대신 풋풋한 아마추어 여배우들을 대거 기용함으로써 아마추어적인 스피릿을 프로의 정취로 담아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장르 자체가 의미하는 프로-앰이란 단어도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가 결합했다는 뜻인데, 이들이 제작한 포르노그라피는 전문 남성 호스트가 포르노그라피의 경험의 전무하거나 적은 아마추어급 배우를 픽업하여 일대일 인터뷰를 거쳐 자연스럽게 포르노를 찍게 만드는,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씨네마-베리떼 스타일의 포르노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기반에는 날로 소형경량화되는 고성능 8mm, 6mm 비디오 카메라와 프리미어 같은 강력한 피씨 기반 편집 소프트웨어의 기술적 발전이 있었던 것이다.


* 사진삭제 ->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프로앰 시장의 기반을 마련하신 두 인물 되겠다. 에드 파워즈와 앤디 웨스트 옹. 웨스트 옹 얼굴이 익숙한 분들은 꽤 많을터... 하지만 그가 한 때는 메이저리그 투수 문턱에서 좌절했어야 했던 아픈 과거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근데 야구 선수보단 지금 생활이 더 흡족할 듯? 아닌가?

 

바로 이웃집에 사는 듯한 상큼풋풋한 아마추어 여배우들이 말빨과 성능을 겸비한 프로 아저씨들의 구라와 테크닉에 의해 넘어가는 장면은 일반 포르노그라피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바로 딱 맞아 들어가는 것이었고, 에드 파워즈의 "버스 스탑" 시리즈나 랜디 웨스트의 "업앤커머즈" 시리즈의 상업적 성공은 그야말로 눈부신 것이었다. 특히 현재 디바를 넘어 포르노업계의 여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제나 제임슨도 랜디 웨스트의 업앤커머즈에 출연하여 씬 하나로 포르노 업계를 경악시킨 아마추어 출신이라는 점을 보면 이 장르가 90년대 이후 포르노 업계 자체를 얼마나 바닥 깊은 곳에서부터 바꾸어 놓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4. 시모어 버츠는 이런 변화의 맥락에서 기존의 포르노 경험이 없이 얼터너티브로 대표될 수 있는 당시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살리며 프로-앰 업계에 혜성과 같이 등장한 인물이다. 40대의 걸쭉한 프로 아저씨들이 입담이 지배하는 프로-앰 마켓에서 20대의 시모어가 90년대의 감수성과 새로운 패션으로 무장하고 "시모어 버츠의 모험"으로 데뷔하였을 당시 그 느낌은 정말로 신선했다. 트로트 가수가 점령하고 있던 돈텔마마에 서태지가 특별 출연한 격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X-제네레이션에 어울리는 복장과 유행어에 당시의 X-스포츠를 연상스키는 섹슈얼리티의 극단적인 모험은 젊은 포르노그라피 사용자들을 열광시켰고, 나중엔 페르소나 자체가 모방될 정도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포르노 업계에서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믄 몇 안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리고 급기야는 그를 둘러 싼 생활이 21세기 방송의 화두인 리얼리티 쇼로 다시 한번 재포장되는 영광(?)을 갖게 된다.


*사진삭제 -> 얘가 시모어 버츠 되겠다. 64년생이라니까 우리 나이로 43? 90년대 데뷔 이후 꾸준함을 유지하는 포르노그라피 제작자 감독 배우 되겠다. 그리고 이 리얼리티 코메디 쇼의 주인공 되시겠다.


5. 그런데 이 시모어 버츠라는 친구가 포르노그라피 사업을 진행하는데 그 방식이라는게 사촌형 뿐만 아니라 어머니까지 끌어들여서 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편견이 심한 포르노 업계에서 어머니와 같이 사업체를 끌고 나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화제가 될만한 것인데.. 이러한 상황을 미국의 케이블 텔레비전이 놓칠 리 없다. 특히나 요즘처럼 리얼리티 기반 쇼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작금에 시모어 버츠의 사생활 자체는 레이트 나잇 뷰어를 끌어들일 요소는 상당히 많은 것인데... 90년대 비디오 기술에 힘입어 포르노 업계의 기린아가 된 인물의 일상을 또 다시 디지털 비디오 기술에 힘입어 약진하고 있는 "리얼리티 쇼"라는 새로운 장르가 다룬다는 점 자체가 흥미롭다. 공히 두 장르 모두 "영상의 사실성"을 모토로 내 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조작되거나 보여주고 싶은 영상만 보여주는 - 스타일만 씨네마 베리떼인 "유사 씨네마 베리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90년대 이후 비디오 컬처가 발전하면서 영상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실제적, 실천적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엣날이면 제기하고 더 설을 썼겠지만, 이제 나이 먹어 그럴 힘도 없다. 걍 지나가자.)

6. 하여간 이렇게 만들어진 패밀리 비지니스란 리얼리티 코메디 재미있다.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포르노그래퍼들에 대한 편견을 무척이나 의식한 듯 결국 포르노 배우나 제작자, 산업의 종사자들도 다 같은 사람이다란 명제에 너무 매달려 선전하고 있는 것이 흠이지만, 사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 산업의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 자체가 하나하나 흥미거리다. (물론 앞서 말했지만 이 리얼리티 쇼에서 보여주고 있는 리엘리티는 선택되고 조작된 보여주고 싶은, 유통되어야 할 당위의 명제를 가진 리얼리티이다. 실제 상황의 탈을 쓴 유사(pseudo) 리얼리티란 말이다.) 특히 컬러풀한 페르소나를 가진 어머니와 사촌형이 시모어 옆에 붙어있고, 쭉쭉빵빵한 여인네들이 여기저기서 옷 벗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야말로 우리같은 사람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꿈의 공장"인 듯한 상황을 연출해 주니 말이다.

7. 하여간 이 정도의 하드코어에 근접한 영상을 케이블 TV에서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은 전세계적으로 상당히 센서쉽의 제한이 낮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쇼타임이라지만 예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정도로 포르노 제작현장의 에피소드를 보여주는데, 여기서 한가지 단단히 배우게 되는 사실은 프로-앰 제작자들이 가능한 한 사실에 가깝게 프로-앰 포르노를 만드려고 하지만 결국 우리가 최종적으로 접하게 되는것은 사실의 영상이 아니라 연출되고 정리된 사실이란 점이다 (계속되는 동어반복.. -_-)

우찌되었건 지금까지 시즌 1을 다 보았다. 재미있고... 예전에 학위 논문을 써 보려고 잠시 공부했던 분야라서 그런지 더더욱 재미있게 다가온가. 물론 fake나 시모어 버츠의 에고나 포르노업계의 선전선동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게 그렇긴하지만.... 어쨌던 다음 시즌이 더욱 기대되는 시리즈이고,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한 때 시모어의 사이드킥이었던 쉐인이 한번쯤 출연해 줬으면 한다. 혹시 시모어의 이혼한 아내이자 아들 브래디의 엄마가 쉐인이 아닐까하고 짚어보고 있긴 한데...

ps. 글 쓰고 찾아보니.. 역시 짐작대로 시모어가 쉐인과 결혼했던 적이 있었네. 그런데 황당한 건 브래디란 시모어의 얘는 쉐인 사이의 얘가 아니고 다른 포르노 배우 테일러 헤이즈 사이에서 난 거라네.. 그런데 더 더 웃긴 건 쉐인과 테일러 헤이즈가 제작 계약을 맺고 최근에도 같이 일하고 있는 사이고.. 하여간 참 복잡하고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이네그려..

by 교활한돼지 | 2005/12/27 15:26 | 씨네마? 키네마? | 트랙백(2) | 덧글(2)
황당무계 가상역사 잠수함영화.. 로렐라이


1. 로렐라이란 이 매혹적인 이름의 영화는 2005년 일본 영화이다. 후지 텔레비전과 도호사가 공동으로 제작한 잠수함 영화로, 줄거리의 기본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니 떨어지고 난 후 2차 원폭투하를 막기 위해 일본 잠수함 이-507호가 출격한다는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잠수함의 성격이나 후반으로 갈수록 전개되는 스토리는 참으로 "일본틱"하다고 할 정도로 일본적 상상력에서나 나올 법한 아햏햏한 설정들로 가득 차 있어 볼수록 몰입보다는 스토리 근본에 대한 논리적 허점찾기로 일관하게 만든, 참으로 오랜 만에 접한 집중 못하게 만든 잠수함 영화이다.

2. 이 영화의 주인공의 하나는 로렐라이란 독일제 일본군 잠수함이다. 이-507이란 함명을 받은 이 잠수함은 전쟁 말기에 "나찌 과학"의 정수로 만들어졌으나 어찌어찌 해서 독일에서 사용 못하고 일본으로 보내져서 최첨단의 성능으로 일본을 원폭의 재앙으로부터 구할 임무를 부여받게 되는데.... 이 잠수함에 탑재된 초첨단 시스템이라는 로렐라이의 설정이 참으로 거시기하다. 일종의 생체무기를 이용한 레이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한 소녀의 신경조직에 잠수함의 경보시스템을 연결하고 이 소녀가 탄 미니잠수함을 이-507이 견인하고 다니면 반경 120마일의 모든 것 - 함선, 어뢰, 폭뢰 심지어 해저의 지형까지 - 이 한 눈에 쫙 펼쳐지는, 지금도 상상하기 힘든 성능의 레이더 시스템이 완성된다는 것인데.. 여기서 일본 얘들이 항상 좋아하는 "여자 몸에 호스 쳐박고 그 다음에 뭔가"가 등장한다. 예전에 우로츠키 동자같은 포르노 아니메나 최근의 공각기동대 TV 판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그 익숙한 장면이 이 실사 영화에서도 등장하는데... 일본 사람들은 정말로 이런 상상력에 익숙한 것인지 아니면 문화 자체에 그런게 있는건지.. 하여간 독특한 사고방식이라고 밖에...

3. 자 그럼 이 로렐라이 시스템을 돌리려면 소녀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 잠수함 영화엔 파울라라는 이름의 1/8 일본인 피 (할머니가 일본인이란다) 를 가진 소녀가 탑승한다. 그런데 이 파울라라는 소녀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일본인 할마시가 유태인이랑 결혼했다는 얘기가 되지만... 또 성이 "애브너"인 걸로 봐선 완전히 유태인 같진 않고... 하여간 어렸을 적에 유태인 수용소에 끌려 가 온갖 생체실험을 받아 몸에 특별한 능력이 있음이 밝혀져 이 로렐라이 시스템의 구동에너지가 되었고, 독일이 패망하면서 로렐라이 시스템 부속으로 일본에 보내져서 여기까정 왔다는 스토리인데.. 이 소녀가 일본말을 한다. 그렇다면 유태인 수용소에선 제 2 외국어로 일본어를 교육받았다? 하여간 설정에 구멍이 많지만, 이 부분 X-Men의 냄새가 무쟈게 많이 나는 점 제작자도 부인하기 힘들꺼다.

4. 그런데 이 비인간적인 무기가 독일제라는 설정에 포인트가 있다. 이 배의 놀라운 시스템을 알아버린 일본인 승무원들, 이거 상당히 비인간적이라는 무기체계라는 공감을 갖게 된다. 게다가 이 놈의 시스템이 사람 죽는 걸 이 파울라란 소녀가 감지하게 되면 기절을 해 버리는 바람에 갑자기 기능이 정지되는 참으로 황당한 에러를 갖고 있는 시스템인 데다가, 게다가 함장 - 일본 영화 보면 항상 나오는 그 아저씨, 야쿠쇼 코지 - 마저도 일본군의 카미카제에 반대해서 실전에서 배제되기도 했던 인물인 관계로 사람을 무기로 이용하는 이 로렐라이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다같이 제기할 수 밖에 없는 시츄에이숑이다. 즉 영화에 나오는 일본군은 상당히 인간적이나,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비인간적 무기시스템은 "나찌"놈들이 만든 비인간적 무기이고 이것을 사용할지에 대한 존재론적 인본주의적 고민은 일본인 우리들의 몫이라는 것인데, 카미카제라는 인류역사상 가장 반인륜적 "무기"로 자신들의 백성을 죽음의 환각에 빠지게 하고, 뉴기니 전선에서 자신의 군대에게 인육을 먹으면서 옥쇄를 하라고 강요했던 천황이 천수를 누린 나라에서 이런 얘기를 하니,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5. "하여간 우리는 잘못없고 이 비인간적인 건 다 나찌 놈들 책임이고 그저 우린 이걸 가지고 마지막 비극을 막는거야"라는 정신으로 충만한 이-507의 승무원들은 제2의 원폭이 떨어지기 전에 이 원폭을 수송하는 수송함을 침몰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출발한다. 이것은 히로시마 원폭 팻보이를 배달하고 본국으로 귀환하던 중 일본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한 미해군의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영감을 받은 듯 한데... 문제는 이게 말이 되냐는 거다. 시간으로 따져 보면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지고 그 다음날 이-507은 출격명령을 받는데.. 8월 9일에 떨어질 2차 원폭의 수송선을 저지하기 위해 마리아나해로 가라고 한다. 음.. 말로는 뭐를 못하겠냐마는..... 당시 가장 진보했다는 유보트의 해상 최고 속력이 10노트가 채 안되고, 잠행 속도가 10노트 정도인 걸 생각해 보면, 이 이-507에는 현재 미해군의 LA급 공격원잠보다 훌륭한 동력기관이나 중국 도인으로부터 전수받은 축지법을 탑재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인데, 안타깝게도 영화 내에 동력기관이나 축지법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태평양을 동해 정도 크기로 이해하고 작전하는듯...

6. 그런데 가다 보니 나가사끼에 두번째 원폭은 떨어지고, 실제 임무는 동경에 떨어 질 제3의 원폭을 막는 것이라는 게 밝혀진다. 일본 해군의 똑똑한 놈이 이 로렐라이 시스템을 미국에 넘겨 주는 대신 동경에 떨어지기도 되어있는 원폭을 취소한다는 조건을 내세우고, 이-507 선원들을 속였다는 것인데... 모든 영화가 그러하듯 이게 제대로 될 리 없다. 배를 미국에 넘기려는 측의 기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동경에 원폭이 떨어질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함장, 그걸 막기로 결의를 다지는데.... 여기서 이 영화가 가진 정치적 의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전쟁은 끝나도 누군간 일본을 재건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살아남아야 하고 그 상징의 중심인 도쿄를 구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전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 함장과 선원들이 취하는 결단과 희생, 그리고 그러한 희생을 뒤로 하고 생존을 선택한 선원들을 통해 일본이 앞으로 어떻게 재건되야 하는지에 대한 "일장연설"이 펼쳐진다. 최근의 일본 극우영화에 보이는 파시즘적 성향의 부활은 보이지 않지만, 자신들이 전쟁을 통한 비인간적 행위는 대충 응금슬쩍 넘어가고 대신 미래만을 기약한다는 점에서 일본 특유의 무책임한 역사의식의 반복을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의도했건 않았건 간에 일본 역사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면피정신, 확실하게 구현된다. 그것도 종전 60년에 딱 맞춰 개봉한 영화에서....

7. 그래서 마리아나 제도의 비행장으로 이-507은 향하게 되고 여기서 미국 구축함대의 필사적인 방어망을 로렐라이 시스템을 작동시켜 돌파하고 종국에는 출격하는 B-29를 격추시킴으로써 동경의 비극을 막는다는 건데.... 이 마지막 배틀, 군사적으로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대잠작전을 하는 미국 구축함대가 마치 논에 떨어진 바늘 하나 찾으려고 일렬로 서서 쭉 걸어가는 모양으로 뺵뺵하게 대형을 이루고 일자로 서서 기동한다. 그리고 거기 동원된 배가, 아니 CG가 거의 50척이 넘는데... 마치 목욕탕에다가 배를 가득 채워놓으면 아래 잠수함이 잡힌다는 초딩적 생각으로 설정을 한 듯.. 하여간 말도 안되는 설정을 넘어 이제 507호는 날아오르는 B-29를 향해 75mm 포 (생각이 가물가물한데 유보트에 탑재된 함포는 75mm 포로 알고 있다. 하여감..) 2발로 명중시켜 바로 골로 보내버린다. 세계 대공전 사상 대구경탄만으로 이동 타겟을 100% 명중시킨다는, 초탄명중의 신화를 창조하고 있다.. 에고고...

8. 결론적으로 로렐라이란 영화는 1) 일본 특유의 가상 역사 시나리오 짜기에 2) 신비한 여체에 파이프 꼽아서 뭔가 이루려는 초과학적이자 변태적인 아니메-망가 전통에 3) 엑스멘의 홀로코스트 씬에서 차용한 슈퍼 히어로의 생성과정을 더하고 4) 나찌는 나쁘고 그래도 우린 좀 좋은 면이 많았다는 정치적 노선을 바탕으로 5) 온갖 잠수함 영화의 클리쉐와 특수 효과 및 음향 효과를 빌려다가 6) 일본 영화 특유의 센티멘탈리즘 - 유사 휴머니즘 스토리를 더한 대신 7) 군사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상황 및 작전 설정을 8) 어설픈 특수 효과로 떡을 친 영화가 되겠다.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수작으로 느낄 수도 있는 작품이겠지만, 일본과 과거사를 공유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딱히 틀린 곳은 없으나 니들이 지금 그런 말을 할 개제가 되냐란 질문을 던지고 싶을 만큼 안이하고 순진한 역사관을 가진 영화다. 어쩌면 이런 영화에 그 이상의 반성이나 무엇을 기대하는 것도 바보스런 일일지 모르겠지만, 일본 사람들의 일반적인 양심 자체도 이 영화에 나타난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2005년에 제작된 영화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CG의 수준이 허접하다. 예전에 한국에서 드라이 어쩌구 기법으로 만들었다는 잠수함 영화의 특수효과 보다도 훨 못하단 느낌인데, 주인공인 로렐라이야 뭐 그런대로 정성을 기울였다손 치더라도 조연으로 나온 미국 구축함들의 3D CG를 보고있자면 이거 장난하고 있는 거 아냐란 생각이 팍팍 들 정도로 처참하다. 킹콩의 하이퍼리얼리즘이 새로운 CG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2005년에, 일본영화의 CG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인가? 정말 궁금하다..

by 교활한돼지 | 2005/12/26 12:04 | 씨네마? 키네마? | 트랙백 | 덧글(4)
데논 SACD 플레이어 DCD-2000AE
올 2005년은 그야말로 내 오디오 인생에서 대변혁이 일어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앰프도 바꾸고 스피커도 바꿨지만, 무엇보다도 음악을 듣고 소리를 만드는 패러다임 자체가 완전히 바뀐 해라고나 할까? 정신없이 달려 온 2005년의 오디오 생활이지만, 놀랍게도 나를 가장 놀래킨 쪽은 앰프나 스피커가 아닌 소스기기였다. 그것도 별 감흥을 못 느낄 것이라고 판단했던 SACD가 연말에 마지막으로 강펀치를 나한테 날렸다. 데논 SACD 플레이어 2000AE를 들이면서....

<-- 당당한 데논 DCD-2000AE가 사진사를 잘 못 만났을 때의 모습.. ㅜ_ㅜ 아 집에 조명이 넘 안 좋아...

사실 SACD에 대한 경험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파이오니아의 만능기기 755Ai를 들인 게 벌써 3년이 훌쩍 넘어가니 SACD를 들어 온 세월도 그만큼 이었다는 계산은 나온다. 하지만 755를 가지고 들어 온 SACD는 다채널을 지원한다는 사실 이외에 큰 감흥은 없었다. 딱히 CD 보다 소리가 더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LP의 감성에 다가가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혹시나 해서 올해 앰프와 스피커 바꿔치기 대공사를 하면서 디지털 소스 부분에 대한 개비 기획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2채널 SACD 플레이어에 대한 방대한 "지름 기획"을 시작했었다.

사실 SACD 플레이어를 지르자면 큰 거로 한 장 넘어가거나 육박하는 에소테릭이나 크렐, 그리고 기타 무쟈게 비싼 하이엔드 기기를 빼고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편이다. 중저가 기기를 내던 소니와 필립스는 이미 기존 모델들을 단종시키고.. 심지어 SACD의 종가인 소니에서조차 더 이상 SACD 포맷에 대한 지원은 없을 거라는 "허무맹랑"한 소문이 나오기도 하고... 업친데 덥친 격으로 유니버설 뮤직에서마져 SACD 추가 발매를 전면 재고려 중이라는 우울한 소식도 들리고... (이쯤해서 CD사면 되지 않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동일음반이 SACD와 CD가 같이 출시되었을 경우... 현재는 SACD를 구입하는 편이다. 왜냐면 SACD가 일반 CDP에서도 플레이 가능하며, 일부에서는 리마스터링 덕에 음질 개선의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있고, 무엇보다도 복각 음반의 경우 SACD가 더 "싸다는" 점이다.)

하여간 이 놈의 SACD 플레이어 시장에서는 지난 1~2년간 마란츠 플레이어 외에는 구체적 대안이 거의 전무했던 게 사실이다. (소니 중고를 산다면 말이 다르겠지만...) 그런데 결정적으로 난 마란츠의 소리를 싫어한다. 일부에서는 SACD 플레이어에 있어서 만큼은 마란츠 특유의 부드러운 소리 보다는 남성적인 소리가 나온다고들 평들이 있긴 하지만.... 70년대 말의 2330 리시버 이후의 마란츠는 마란츠로 생각하지 않는 "그놈의 지독한" 선입관 떄문에 마란츠를 장바구니 안에 넣고 망설이고 망설이고 장고에 장고를 거듭 할 수 밖에 없었다.  걍 질러버룜?

<-- 이 놈이 장바구니에 담겼다가 나오기를 몇 번씩 반복한 마란츠의 SA-11S1... 미안하다, 안 질러서...

하여간.. 이렇게 망상에 빠져 지름신과 실갱이하던 중 들려 온 기쁜 소식... 데논이 막강한 SACD 플레이어를 내논다는 희소식... 가격만 5000파운드... 컥.. 천만원? 그래도 데논이란 회사는 기함을 내 놓으면 그 다음에 쫄래쫄래 기함 엉아의 기술을 하나 둘씩 빼 먹은 하급기를 슬금슬금 내 놓는다는 선례를 잘 알고 있는 터.... 걍 기다리기루 했다. 그리고 대망의 11월 드디어 DCD-A1의 두다리 건너 하급기인 DCD-2000AE (일본에선 모델명이 1650이던가?) 가 출시된다는 메일을 받고 무념무상 상태에서 지름신이 강림하도록 내비려 두었다. 결과는 한국에 수입된 물건 중 거의 최초의 정식 구입자가 되는 "영광" -_- 과 (업체 배송관계자가 그러드라.. 제일 처음으로 나가는 거라고...) 10개월간 꼬박꼬박 날라 올 신용카드 명세서이다. ㅜ_ㅜ  어째든 이 놈의 기계가 11월 말에 디밀고 들어왔다. 무게도 거의 20키로에 가까운 헤비급 덩치를 자랑하면서..

이제 이 놈이 들어온 지도 막 한달이 지났다. 그 동안 이 놈은 SACD란 매체가 얼마나 막강한 잠재력을 지닌 매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 값에 발란스 단자를 빼 먹은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이냔 욕을 가끔 들어먹고 있긴 하지만... 그 점을 빼 놓고는 귀여움을 듬쁙 받고 있는 중이다. 이 놈을 통해 들은 SACD의 음은 기존의 다목적 플레이어에서 듣던 그 음이 아니다. 야노스 스토커의 바흐 무반주첼로 조곡을 듣고 있자면, 정말로 거짓말 보태지 않고 녹음 현장의 공기의 흐름까지도 들리는 듯 하다. 뻥이 넘 심한가? LP에선 마찰음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었을 녹음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의 현장감을 전해주는 소리 이상의 그 무엇! 이 들린다, 아니 느껴진다는 건데... 자뻑이라고 하면 할 수 없고.... 하여간 디지털 매체에서 샘플링 주파수와 비트레이트가 증가로 인해 얼마나 아날로그에 소리가 접근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거짓말 아니다. 유니버설 플레이어의 SACD 소리완 완전히 다르다.

솔직히 데논 물건을 실제로 들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 아니다.. DL-103이란 카트리지도 있지요.. 호곸.. 그러고 보니 턴테이블도 2개나 들어왔다 나가고 했었네그려... 헤헤...  하여간 오랜 세월 동안 데논은 나와는 인연이 없는 브랜드 였다. 아마도 가장 근접했던 경험이 AV를 시작하면서 데논 리시버를 접할 기회가 있었을텐데... 그때도 난 역시 "AV는 야마하야"라는 자뻑 선입관으로 야마하로 가 버렸다. 하지만 이런 데논에 대한 소리를 제대로 접하게 해 준건 DL-103이란, 그야말로 40년 이상을 오직 한 길로 파고 있는 데논의 카트리지였고, 이 놈의 카트리지 때문에 데논에 대한 내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된 듯 하다.. 그래.. 일본 기계에선 역시 데논이 딱 내 입맛이야... 말하자면 또 다른 선입견의 시작인데.. 하여간 덕분에 2000AE가 들어오게 되었고.. 현재까진 아주 에브리바디 해피한 상황이다.


내 음악에 대한 생각은 굵직굵직-호쾌-호랑방탕이다. 그러다보니 앰프 군도 변강쇠같은 힘이 우선인 놈들을 찾게 되고, 소리도 직진성 (linearity) 이 보장된 상태에서 빠르고 직선적이며 어둡더라도 호방한 중음으로 치고 나가는 걸 선호한다. 어찌 보면 마초 성격이 그대로 음악 듣는 데에도 반영되는 셈인데.. 그런 점에서 이 놈의 2000AE는 나와는 찰떡궁합인 듯 싶다. 일단 우울한 듯한 중후하게 깔리는 중저음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화려함 보다는 절제하는 고음의 처리가 귀를 괴롭히지 않는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이 놈이 신통방통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오디오에 대해 정리해가고 있는 생각과 파라다임으로 선택한 제품이 딱 기대하고 예측했던 그대로의 음악을 들려준다는 데 대한 자기만족감일 것이다. 꿈에 본 숫자가 로또로 당첨된 느낌이라고나할까? (돈을 따기보단 쓰면서 얻는 쾌감이라는 게 정반대이지만... ㅜ_ㅜ) 어찌 되었건 금년에 오디오에 한 베팅 중에서 가격대비 효율이 가장 높은 놈이다. 이 놈을 통해서 듣는 스토커의 무반주 첼로와 밍거스의 베이스는 그야말로 죽음 그 자체다. 참.. 그 느낌을 말로 형언하기도 그렇다. 하여간 앞으로 옆에 끼고서 갈데까지 가 볼 녀석이다. 놈에게 축복을!!!

ps. 나한테 남성적 소리에 가까운 오디오는 놈이고 여성적인 소리는 년이다. 그래서 데논은 놈이고 야마하는 년이다. 파이오냐는 아수라 백작이고... 오늘도 땀 삐질삐질 흘리며 전기를 왕창왕창 잡아먹고 있는 크렐 엉아는 당연 놈이고.. 오해 없길...

by 교활한돼지 | 2005/12/22 14:21 | Machine Lovely... | 트랙백 | 덧글(4)
발 루튼 호러 컬렉션

작년에 신애 21이란 "비싼" 영화주간지에 DVD 관련 글을 한 3~4개월 정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집중해서 진행하지 못한 관계로 아쉬움이 개인적으로 많이 남았었는데, 어찌저찌해서 올 10월부터 다시 쓰게 되었다. 해외에서 출시된 DVD 타이틀 중에서 소개할 만한 것에 대해서 간략하게 쓰는, 그야말로 반 페이지 짜리 쪽글인데 지면이 너무 한정되다 보니 쓸만해서 탄력이 붙다보면 글을 마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원문도 보관할 겸, 부족한 부분도 보충할 겸, 사진도 좀 정리할 겸 해서 겸사겸사 정리를 시작해 본다.



발 루튼 호러 컬렉션 - 원문은 신애 21 10월 중순경에 나갔음...




원문 시작 ----------------------------------------------------------------------------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등의 연이은 실패로 재정적 부담을 안게 된 RKO는 저예산 B급 공포영화라는, 다소 엉뚱하면서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난국을 해결하려 했는데, 결과적으로 작품의 성과는 이뤘지만 몰락하는 스튜디오를 파산에서 건져내지 못한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게 된다.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의 어시스턴트였던 발 루튼이란 무명의 인물이 RKO의 이 마지막 도박을 총지휘하였는데, RKO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지금 그가 남긴 공포영화들은 역설적으로 오손 웰즈의 영화와 함께 RKO의 가장 빛나는 영화 유산으로 남아있다.

 

루튼은 감독 자크 뚜르네와 1942년에 발표한 <캣 피플>을 통해 기존의 유니버설 영화사의 공포물과 대비되는 새로운 유형의 공포 영화를 창조해 낸다. 공포의 근원이 프랑켄슈타인이나 드라큘라와 같은 괴물이 아닌 인간 내부에 잠재된 감정과 억압된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심리학적 접근 방법으로 공포의 영역을 심리적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었는데, 이러한 심리적 공포감은 당시 유행하던 느와르적 촬영 기법과 결합하여 편집증적 공포를 표현하는 특유의 강렬한 콘트라스트의 흑백 촬영술의 전통에서 발현되었다. <캣 피플>의 성공 이후 루튼은 뚜르네 외에도 웰즈 영화에 참여한 편집 기사였던 마크 롭슨과 로버트 와이즈 등을 감독에 데뷔시킴과 동시에 <드라큘라>의 배우 벨라 루고시 등을 끌어들여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캣 피플의 저주> <유령선> <죽은 자의 섬>등 총 9편의 공포 명작을 1946년까지 RKO에서 제작하게 된다.

 

 

루튼의 공포 영화들은 판권 소재의 모호함 때문인지 DVD 출시가 연기되어 왔다. 뚜르네의 작품들만 고국 프랑스에서 출시된 바 있는데, 이번에 미국 워너에서 루튼이 4년 동안 RKO에서 제작한 공포영화 전작을 하나로 묶은 박스세트로 출시하였다. 아쉽게도 화질은 워너의 다른 고전에 비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며, <캣 피플>의 경우 2년 전 발매된 프랑스판보다 오히려 못한 화질을 보여준다. 하지만 <엑소시스트>의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참여한 음성 해설이 일부 작품에 수록되어 있으며, 루튼의 일대기 <어둠 속의 그림자>가 특별 부록으로 포함되어 있다.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루튼의 생애에 대한 좋은 다큐멘터리로서, RKO 스튜디오의 우울한 역사와 루튼의 영화 역정, 그리고 루튼의 지도 아래 뚜르네나 롭슨, 와이즈와 같은 다재다능한 감독들이 창조해 낸 새로운 유형의 공포물이 후대 공포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공포 영화의 팬들에겐 장르 계보의 빈 칸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원문 끝 ------------------------------------------------------------------------------

 

발 루튼이란 인물이 영화 산업에서 일을 한 시기는 매우 짧다. 데이빗 셀즈닉의 어시스턴트로 30년대에 일을 시작하였다고 하나, 그 대부분의 일들이 크레딧을 얻지 못한 채 진행한 일이라서 공식적인 기록에서 그가 영화계에 일을 한 시기는 정말로 RKO에 픽업되서 호러 영화 제작을 총괄했던 그 시기와 RKO와 헤어진 후 그런저런 영화를 만들었던, 1940년애의 10년도 안되는 시기에 국한된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제작자로서 활동했기 때문에 웬만한 영화팬, 특히 호러영화팬 아니고서는 그의 이름은 매우 낯설다. 하지만 그가 남긴 영화적 유산은 매우 눈부시며, 특히 호러 영화 장르에서 그가 이룩한 장르적 특징이나 표현 방법과 제작 방식들은 그것이 없었으면 현대 호러 영화가 과연 성립될 수 있었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까지도 던질 만큼, 그 영향력은 심대하다. 원래 루튼은 영화쪽 일을 하기 이전 판타지, 호러, 포르노 등을 쓰던 작가였다. 그가 문학적으로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장르 소설을 쓰던 그의 작가적 상상력이 훗날 그가 "작가적" 역량을 보인 영화 프로듀서로서 성장하게 된 자양분임은 틀림없는 듯 하다.

 

루튼 이전의 호러 영화들이 킹콩과 같은 괴수나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머미, 울프맨과 같은 공포의 "실재적 대상"에 대한 구체적 공포를 묘사하는 데 치중했던 반면 루튼의 호러 혹은 RKO 호러의 특징은 인간의 심리 근저에 깔려 있는 공포의 심리 그 자체의 근원에 파고들었다는 데 있다. 실재로 존재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어느날 갑자기 느껴지는 섬찟한 느낌의 인간 본연의 공포감... 이것이야말로 괴물 같은 실재적 사물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공포감을 몇십배 뛰어넘는, 인간이 원죄로서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공포감일텐데, 이런 초자연적이고 심리적인 공포가 루튼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영상으로 실체화된다. 자크 트르뇌의 영화 <캣 피플의 저주>에서 여주인공 시몬 시몬이 공원을 산책하면서 느끼게 되는 또 다른 "존재"가 실재한다는 그 "느낌", 그리고 영화의 후반 건축사무소에서 빠져나올 때 표현되는 강렬한 색의 대비와 비대칭적인 구도는 관객에게 초자연적인 공포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언제든지 함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때 트르뇌가 보여준 강렬한 흑백대비의 씨네마토그라피는 그야말로 40년대 흑백촬영술의 정수를 보여줄만큼 대단한 것이고, 또 그만큼 호러의 깊이를 더해주는 불멸의 명장면이기도 하다.











호러 영화 장르의 역사에서의 루튼의 위치 외에도 그의 영화만들기에 대한 과정을 보면 제작자 또는 프로듀서로서의 자질에 대해 많은 부분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점 원문에서 소략하게 다뤄 진 점이 매우 아쉽다.) 루튼 자신이 RKO의 구원투수로 등장하게 된 무렵 사실 루튼의 입지는 별 볼 일 없는 처지였다. 워낙에 RKO는 1941년도에 희대의 천재였던 오손 웰즈의 두 작품 - <시민케인>과 <위대한 앰버슨가> - 으로 영화사에 불멸의 명망을 얻었을지언정, 사업체로서는 위기의 끝에 몰려 있었고 사실 루튼에게 호러 영화를 만들게 함으로써 위기를 탈출해 보고자 했지만 사실 30년대 RKO의 영광을 이어갈 만한 자원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던 듯 하다. 이런 와중에서 루튼은 공포 영화 제작에 있어 기존 역사물의 세트와 자원을 십분 활용하는 등 영화 제작에 더 이상의 불필요한 자원을 투여하지 않고 2진급의 배우들을 기용하는 등 당시의 스튜디오가 지행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B급 영화 제작의 모범을 실천하고, 그 대신 artistic integrity를 촬영과 영화를 감싸는 기운으로 창조하도록 이끈 리더쉽은 프로듀서로서 그의 능력이 얼마나 출중했는지를 증명하고 있는 사실이다.

또 한가지, 오손 웰즈가 RKO에 남기고 간 유산 중 가장 중요하다 할 인적 자원을 그가 활용하여 영화사상 뒤어난 장인 감독으로 꼽히는 마크 롭슨과 로버트 와이즈를 감독으로 데뷔시킨 기회를 준 감독으로서 루튼의 유산 역시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사항이다. (롭슨과 와이즈는 웰즈 밑에서 편집을 담당하였고, 와이즈는 악명높은 앰버슨가의 편집을 담당했던 인물의 하나이다.)
 
뭐... 이러저래 보충할 게 많다고 생각되었지만 막상 쓰려니까 또 안나가는 게 글인 듯 싶다. 또 중간에 네트워크 에러가 나서 글을 다시 쓴 걸 생각하면... ㅜ.ㅜ  하여간 루튼이란 인물에 대해 심도있게 알게 된 것도 다 이번에 출시된 미국 워너의 DVD 박스 세트 덕분이다. 특히 한 프로듀서가 30~40년대의 스튜디오 시스템 하에서 여러 감독들과 작업하면서 제작자로서의 자신의 인장을 꾸준히 유지했다는 점은 매우 특기할 만한 사항이고 때때로 경이롭게까지 보이는 사실이기도 한다. 그 시절에 말이다. 하여간 DVD란 매체와 DVD 기획이 얼마나 중요한 지,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영화사의 또 다른 이면을 배워나갈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우쳐 주는 타이틀이다.

                                                                        

    







 

 

by 교활한돼지 | 2005/12/21 13:54 | 돈 받고 쓴 글들... | 트랙백 | 덧글(4)
여기 글들에 대해서
지난 99년부터 여기 저기에 글을 쓰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현실문화연구라는 문화연구 단체의 동인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시작하게 된 일인데, 월간지나 일간지, 사보 같은 곳에 문화현상이나 대중문화에 대한 길지 않은 글들을 쓰게 된 것이다. 예전부터 생각해 오던 주제들을 풀어 본 것들도 있고 아니면 의뢰에 맞춰 글을 쓰기도 하였다. 하지만 항상 원고 매수와 시간의 제약 속에서 글을 쓰다 보니 항상 마음에 들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대학원 공부를 중간에 작파한 이후로 사물을 대하는 나의 "심각도"가 현저히 바뀐 관계로 글의 깊이나 내용은 항상 거기서 거기였다. 최근에는 주로 DVD로 출시된 영화에 대해 쓰고 있지만, 갈수록 필력이 떨어지다 보니 할당되는 원고 매수도 적고, 또 그러다보니 글의 퀄리티는 계속 떨어지고 있어 이곳 블로그에 지금까지 쓴 글들을 정리하고 보충하는 자리를 만들어 본다. 한정된 지면에 하지 못했던 말들이나 추가로 하고 싶은 말들을 지껄이며 내 자신의 생각을 좀 더 다스려보고 싶기 떄문이다.
by 교활한돼지 | 2005/12/21 11:32 | 돈 받고 쓴 글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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